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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 MagazineNo.01이름

간판을 바꾼 날

시계 무브먼트의 이름이 회사 이름이 되고, 금성사가 LG가 되고, 페이스북이 메타가 됐다. 회사는 언제 자기 이름을 버리는가. 사명을 바꾼 열여섯 곳의 기록을 세 갈래로 나눠 읽는다.

회사 이름은 대개 한 번 정하면 오래 간다. 간판과 명함, 계약서와 등기부, 사람들의 기억에 모두 박혀 있어서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이 크다. 그런데도 브랜드 아틀라스에 수록된 기업들의 연혁을 읽다 보면 사명을 바꾼 기록이 생각보다 자주 나온다. 그 기록을 모아 보니 이유는 대략 세 갈래로 나뉜다. 제품이 회사보다 유명해졌거나, 회사가 옛 이름보다 커졌거나, 다른 회사와 합쳐졌거나.

제품이 회사를 삼킬 때

가장 오래된 예는 오메가다. 스위스의 이 시계 회사는 1877년 두 아들이 합류하면서 '루이 브랜트 에 피스'라는 이름을 썼다. 1894년 형제는 정밀도와 수리 편의성을 갖춘 19리뉴 칼리버를 내놓고 여기에 '오메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무브먼트가 크게 성공하자 1903년에는 회사 이름 자체가 오메가 워치 컴퍼니로 바뀌었다. 제품 하나의 이름이 가문의 이름을 밀어낸 것이다.

페덱스도 같은 길을 걸었다. 1971년 페더럴 익스프레스(Federal Express)로 설립된 회사는 1978년 기업공개와 1984년 국제 노선 확장을 거쳐 글로벌 특송 기업으로 자랐고 1994년 사명을 페덱스로 바꿨다. 정식 이름을 줄인 말이 그대로 회사 이름이 됐다.

Plate 1제품이나 별칭이 회사 이름이 된 경우. 오메가는 1903년, 페덱스는 1994년에 사명을 바꿨고 도미노피자는 1965년에 상호를 새로 지었다.

도미노피자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원래 소유주가 '도미닉스'라는 상호를 쓰지 못하게 하자 1965년 '도미노피자'로 이름을 바꿨다. 억지로 바꾼 이름이었지만 로고에는 그때의 사정이 그대로 남았다. 로고의 점 세 개는 당시 매장 세 곳을 뜻한다.

회사가 이름보다 커질 때

두 번째 갈래는 사업이 옛 이름의 울타리를 넘어선 경우다. 올림푸스는 광학이 주력이 되자 1942년 다카치호광학, 1949년 올림푸스광학공업으로 이름을 바꿨고 2003년 올림푸스주식회사로 정리했다. 광학이라는 단어를 넣었다가 다시 뺀 과정이 그대로 사업의 이력이다.

H&M의 이름에도 확장의 흔적이 있다. 1968년 사냥·낚시 용품점 마우리츠 비드포르스를 인수하며 남성복까지 품목을 넓혔고 그때 사명을 헤네스 앤드 마우리츠로 바꿨다. H&M의 M은 이때 인수한 가게의 이름이다.

Plate 2사업이 옛 이름을 넘어섰을 때. 기아와 하이브, 메타 플랫폼스는 모두 2021년에 새 이름을 걸었고, 크래프톤은 2018년에 사명을 바꿨다.

한국 기업의 예도 많다. 기아는 1952년 기아산업, 1990년 기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꿨고 2021년에는 사명에서 '자동차'를 떼어 내며 로고까지 함께 바꿨다. 이름과 얼굴을 한꺼번에 바꾸면서 전기차 중심의 모빌리티 브랜드로 자리를 옮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같은 해 하이브도 이름을 바꿨다. 2005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로 출발한 회사는 2021년 3월 사명을 하이브로 바꾸고 음반 레이블은 빅히트 뮤직으로 떼어 냈다. 레이블의 이름은 남기고 회사의 이름만 새로 지은 셈이다. 크래프톤은 2017년 배틀그라운드가 세계적으로 흥행한 뒤 2018년에 사명을 바꿨다.

바다 건너에서는 메타 플랫폼스가 가장 크게 이름을 갈았다. 2004년 더페이스북으로 설립돼 2005년 페이스북이 됐고, 2021년 메타버스 개발로 방향을 틀면서 메타 플랫폼스라는 이름을 걸었다. 회사를 세상에 알린 서비스의 이름을 회사 이름에서 내려놓은 것이다.

합치고 나서 부르는 이름

세 번째 갈래는 합병과 그룹 재편이다. 카카오는 2014년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한 뒤 2015년 사명을 카카오로 통일했다. 네이버는 반대로 이름을 한 번 바꿨다가 되돌아왔다. 1999년 네이버컴으로 출발해 2000년 한게임과 합병한 뒤 2001년 NHN이 됐고, 2013년 게임 부문을 떼어 내며 다시 네이버로 이름을 정리했다.

Plate 3그룹 재편과 합병으로 이름이 바뀐 한국 기업들. 금성사는 1995년 LG로, 한국이동통신은 1997년 SK텔레콤으로, 롯데공업은 1978년 농심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 대기업의 그룹 브랜드도 이 갈래에 들어간다. 1958년 금성사로 설립된 LG전자는 1995년 그룹 차원의 통합 브랜드 LG로 사명을 바꿨다. SK텔레콤은 1988년 한국이동통신으로 이름을 바꾸며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했고 1994년 선경그룹에 인수된 뒤 1997년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농심은 1965년 롯데공업으로 설립됐다가 1978년 농심으로 사명을 바꿨다. 1971년 새우깡에 이어 1986년 신라면을 내놓으며 라면·스낵 시장의 선두로 올라섰다.

미국 기업 가운데서는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 젠 디지털의 이력이 복잡하다. Symantec Corporation으로 알려졌던 회사는 2019년 엔터프라이즈 보안 사업부의 인수가 발표된 뒤 NortonLifeLock이라는 이름을 썼고 2022년 9월 어베스트와의 합병을 마친 뒤 지금의 이름을 채택했다.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 기업 익스팬드 에너지는 2024년까지 Chesapeake Energy라는 이름을 썼다. 공동창업자 McClendon이 체서피크만 일대에 대한 애정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이름이 바뀌면 로고는 늦게 따라온다

이름이 바뀐 회사를 기록하는 쪽에도 숙제가 생긴다. 브랜드 아틀라스는 올해 새로 수록한 기업의 로고를 하나씩 눈으로 검수하면서, 옛 이름의 로고가 그대로 붙어 있던 레코드를 여럿 찾아냈다. 젠 디지털에는 NortonLifeLock의 로고가, 익스팬드 에너지에는 Chesapeake Energy의 로고가 붙어 있었다. 공개 데이터에서 로고를 가져오면 이런 일이 흔하다. 회사는 이름을 하루아침에 바꿔도 세상에 퍼진 옛 로고는 한참 동안 남는다. 두 기업의 로고 칸이 지금 비어 있는 이유다. 현재 로고를 확인할 수 있을 때 다시 채운다.

사명 변경의 기록을 한데 모아 놓고 보면 이름은 회사가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하고 싶은지의 가장 짧은 요약이다. 오메가는 크게 성공한 제품의 이름을 골랐고 기아는 '자동차'라는 단어를 떼어 냈다. 메타는 아직 오지 않은 사업의 이름을 먼저 달았다. 간판을 바꾼 날짜를 따라가면 그 회사가 어느 쪽으로 가려 했는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