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s MagazineNo.01연대기
처음에는 무엇을 팔았나
화약, 양초, 볼트, 전신기, 화물. 1800년대 전반에 문을 연 회사 열한 곳의 첫 상품을 지금 하는 일과 나란히 놓았다. 오래 살아남은 것은 제품이 아니었다.
브랜드 아틀라스의 타임라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1800년대 초에 문을 연 회사들이 나온다. 대부분 지금도 영업하고 있고 몇몇은 미국 S&P 500 지수에 이름을 올려 두고 있다. 이 회사들이 처음 팔던 물건을 지금의 사업과 나란히 놓으면 두 목록이 거의 겹치지 않는다. 200년을 버틴 것은 첫 상품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었다.
화약에서 시작한 화학 회사
듀폰은 1802년 프랑스계 미국인 화학자 Éleuthère Irénée du Pont de Nemours가 세웠다. 프랑스에서 끌어온 자본과 수입한 화약 기계로 윌밍턴 인근 Brandywine Creek의 Eleutherian Mills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북미의 화약 산업이 유럽보다 뒤처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에는 미국 군대의 주요 화약 공급자가 됐고 1880년대에는 다이너마이트, 1890년대에는 무연 화약을 만들었다.
전환점은 1903년에 세운 연구소 DuPont Experimental Station이다. 미국의 초기 산업 연구소 가운데 하나였던 이곳에서 20세기 듀폰의 이름난 소재들이 나왔다. 나일론, 테플론, 케블라, 타이벡을 모두 이 회사가 개발했다. 지금의 듀폰은 두 사업부를 운영한다. 의료용 포장재와 보호복, 수처리 소재를 만드는 쪽이 2025년 매출의 47%, 건축 자재와 단열재, 산업용 부품을 공급하는 쪽이 53%를 차지한다. 화약은 목록 어디에도 없다. 남은 것은 화학을 다루는 능력이다.
양초를 그만둔 해
프록터 앤드 갬블은 두 사람의 동업으로 시작했다. 양초 제조업자 윌리엄 프록터와 비누 제조업자 제임스 갬블은 장인 알렉산더 노리스의 설득으로 1837년 10월 31일 신시내티에서 회사를 차렸다. 처음에는 양초와 비누를 함께 팔았다. 1859년에는 매출 100만 달러를 넘기고 종업원 약 80명을 두었다.
두 상품의 운명은 곧 갈렸다. 1880년대에 물에 뜨는 아이보리 비누가 나왔고 1890년대에는 비누만 약 30종을 만들며 양초보다 비누에 힘을 쏟았다. 1911년에는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쇼트닝 크리스코를 내놓았고 1920년 마침내 양초 제조를 멈췄다. 창업자 한 사람이 가져온 업종을 여든세 해 만에 접은 셈이다. 그 뒤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팸퍼스, 팬틴, 페브리즈, 질레트가 모두 이 회사의 브랜드다. 생활용품의 또 다른 뿌리인 콜게이트-파몰리브는 이보다 앞선 1806년 William Colgate가 미국에서 세웠다.
전신기와 볼트
지멘스의 첫 상품은 바늘이 글자를 가리키는 방식의 전신기였다. 1847년 10월 베르너 폰 지멘스와 기술자 요한 게오르크 할스케가 베를린에 차린 전신 제작소 '지멘스 운트 할스케'는 열 명 남짓의 작은 회사였다. 이듬해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를 잇는 유럽 최초의 장거리 전신선을 따냈다. 1866년 베르너 폰 지멘스가 발전기의 원리를 발견하면서 회사의 무게는 통신에서 전기로 옮겨 갔고 1879년에는 외부 전원으로 달리는 세계 첫 전기 철도를 선보였다.
스탠리 블랙앤데커의 뿌리는 더 소박하다. Frederick Trent Stanley가 1843년에 연 볼트 제조소다. 이 제조소는 1920년 창업자의 사촌이 1857년에 세운 룰 앤 레벨 회사와 합쳐 Stanley Works가 됐고 2010년 3월 12일 Black & Decker와 합병하며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볼트 한 가지로 시작한 회사가 산업용 도구와 전동 공구, 가정용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가 됐다.
화물 회사가 카드 회사가 되기까지
첫 상품과 지금의 사업이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일 것이다. 이 회사는 화물 운송으로 출발했다. 1882년 우편환(Money Order), 1891년 여행자 수표, 1958년 신용카드 사업에 차례로 뛰어들며 금융 회사로 바뀌었다. 물건을 안전하게 옮겨 주던 회사가 돈을 안전하게 옮겨 주는 회사가 된 것이다. 옮기는 대상은 바뀌었어도 맡긴 것을 틀림없이 전해 준다는 약속은 그대로다.
의약품 유통 회사 맥케슨도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1833년 John McKesson이 합류하면서 Olcott, McKesson & Co.가 됐고 사업은 식물성 약품을 수입해 도매로 파는 데서 출발했다. 1853년 McKesson & Robbins, 1967년 적대적 인수를 거친 Foremost-McKesson을 지나 1982년 유제품 사업을 팔고 McKesson Corporation이 됐다. 화이자는 1849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촌 형제 찰스 파이저와 찰스 F. 에르하르트가 뉴욕 브루클린에 차린 화학약품 회사였다.
가업으로 이어진 이백 년
일본의 건설 회사 두 곳은 다른 방식으로 오래 살아남았다. 시미즈 건설은 1804년에 세워졌고 초대 경영자 시미즈 기스케가 1859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같은 이름을 쓴 2대 경영자가 1859년부터 1891년까지 뒤를 이었고 2016년에 취임한 이노우에 가즈유키가 13대 경영자다. 이백 년 넘는 동안 경영자가 열세 명이었다는 뜻이다.
1840년에 세워진 가지마 건설은 1930년 주식회사 가지마조가 됐다가 1947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1965년에는 일본 최초의 초고층 빌딩으로 소개된 지상 36층의 가스미가세키 빌딩 공사를 시작했다. 두 회사가 겪은 시간에는 그늘도 있다. 두 회사 모두 일제강점기의 군수 사업이나 강제 동원과 관련된 기록이 브랜드 페이지에 남아 있다. 오래된 이름은 그 이름이 지나온 시간 전체를 함께 짊어진다.
한 사람의 공방에서
마지막은 까르띠에다. 1847년 파리에서 28세의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가 스승의 공방을 넘겨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 회사의 첫 상품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은 무엇을 새로 만들었는가다. 1904년 손자 루이 까르띠에는 비행가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을 위해 손목에 차는 산토스 시계를 만들었고 1917년에는 탱크가 뒤를 이었다. 1914년에 처음 나온 팬더 무늬는 잔 투생의 손에서 메종의 상징이 됐고 1969년에는 알도 치풀로가 나사를 모티프로 디자인한 러브 브레이슬릿이 나왔다.
열한 곳의 이력을 한 장에 펼치면 오래 버틴 회사들의 공통점이 보인다. 첫 상품을 지킨 곳은 거의 없다. 대신 첫 상품을 만들며 익힌 능력은 놓지 않았다. 듀폰에게는 화학이, P&G에게는 매일 쓰는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게는 맡긴 것을 틀림없이 전하는 신용이 그 능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