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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 MagazineNo.01커버 스토리

AI는 어떤 얼굴을 고르는가

파랑과 보라의 그러데이션이 AI의 기본값처럼 굳어지는 동안, 몇몇 회사는 울새와 말, 세포와 별표를 골랐다. 새 옷을 입은 AI 브랜드 아홉 곳을 나란히 놓고 읽는다.

AI 회사의 로고를 떠올리면 대개 비슷한 그림이 먼저 나온다. 파란색에서 보라색으로 번지는 그러데이션, 반짝이는 별, 매끈한 원. 생성형 AI가 제품이 된 지 몇 해 되지 않았는데도 이 업종에는 벌써 관습이 생겼다. 흥미로운 건 그 관습을 만든 쪽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쪽이 같은 시기에 새 아이덴티티를 내놓았다는 점이다. 브랜드 아틀라스 아카이브에는 2023년부터 2025년 사이에 발표된 AI 브랜드 작업이 여럿 기록돼 있다. 그중 아홉 곳을 골라 무엇을 그렸고 누가 그렸는지 나란히 놓아 봤다.

그러데이션이 기본값이 되기까지

관습의 출처를 하나만 꼽으라면 제미나이다. 구글의 AI 챗봇은 2023년 바드(Bard)라는 이름으로 출발했고 2024년에 제미나이로 이름을 바꿨다. 아이콘은 네 꼭짓점을 가진 별, 곧 반짝임을 그린 스파클이다. 출시 이후 제미나이는 이 별에 블루-퍼플 그러데이션을 일관되게 입혔고 같은 별을 구글의 여러 앱에서 AI 기능으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붙였다. 사용자는 어느 앱에서든 그 별을 보면 AI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색과 모양이 곧 표지판 구실을 했다.

그런데 2025년에 제미나이는 스스로 그 색을 버렸다. 새 스파클은 블루·레드·옐로·그린, 곧 구글의 네 가지 색으로 칠해졌다. 오른쪽은 블루가 차지하고 왼쪽으로 갈수록 나머지 세 색이 번진다. 별의 뾰족한 끝도 둥글게 깎였다. AI만의 색을 두는 대신 구글이라는 모회사의 색으로 돌아간 셈이다.

Plate 1파랑·보라에서 벗어난 세 가지 방식. 제미나이는 구글의 네 가지 색으로 돌아갔고 로빈은 울새의 붉은 가슴에서 색을 가져왔으며 퍼플렉시티는 청록 하나만 남겼다.

그 색에서 가장 멀리 도망친 곳은 영국의 법률 AI 회사 로빈이다. 2025년 런던 스튜디오 Otherway가 맡은 리브랜딩은 AI 분야가 흔히 쓰는 파랑·보라 계열을 버리는 데서 시작했다. 대신 회사 이름인 울새(robin)의 붉은 가슴에서 색을 뽑아 '레드브레스트'라고 불렀다. 워드마크는 무겁고 응축된 세리프로 바꿨고 캘리포니아의 일러스트레이터 Ariel Lee가 울창한 숲과 자연의 질감을 회화처럼 그렸다. 계약서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에 숲 그림이라니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Otherway가 노린 것이 바로 그 어긋남이다. 얼굴 없는 기계 대신 온기를 먼저 보이겠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빌린 모양

로빈이 새를 골랐다면 Cohere는 세포를 골랐다. 캐나다 토론토의 기업용 AI 회사 Cohere는 2023년 Pentagram과 함께 정체성을 새로 짰다. 파트너 Jody Hudson-Powell과 Luke Powell이 내건 개념은 'new nature'다. 기린의 무늬나 벌집처럼 자연과 건축에 되풀이해 나타나는 보로노이(Voronoi) 패턴을 시각 언어로 삼았다. 심벌은 크기가 다른 세포 세 개가 이어져 알파벳 C를 이룬다. 색도 같은 논리를 따른다. 침엽수 녹색이나 버섯 회색 같은 자연의 색을 모의 코랄, 합성 쿼츠 같은 인공의 색과 짝지어 그러데이션으로 늘린다. 생물과 연산을 한 화면에 두겠다는 발상이다.

같은 두 파트너는 2025년 Twelve Labs에서 말을 그렸다. 영상의 내용을 이해하고 검색하는 AI를 만드는 이 회사를 위해 Pentagram이 세운 개념은 'video as volume'이다. 영상을 프레임이 한 줄로 늘어선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로 다룬다는 뜻이다. 심벌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1878년에 찍은 질주하는 말의 연속사진에서 가져왔다. 작은 사각형 모듈로 쪼갠 말과 기수다. 움직임을 처음으로 잘게 나눠 기록한 사진을, 움직임을 통째로 이해하겠다는 회사의 얼굴로 삼은 것이다. 회사가 자기 AI 모델에 말 이름을 붙여 온 점도 이 선택과 맞물린다.

Plate 2펜타그램이 연달아 맡은 AI 브랜드 세 곳. Cohere는 2023년, 이소모픽 랩스는 2024년, Twelve Labs는 2025년 작업이다.

그 사이에 Pentagram이 맡은 또 한 곳이 이소모픽 랩스다. 구글 딥마인드에서 떨어져 나와 AI로 신약을 설계하는 이 런던 회사는 2024년 정체성을 정비했다. 회사 이름은 두 구조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수학 개념, 동형사상(isomorphism)에서 왔다. Pentagram은 이 개념을 끊임없이 다시 조합되며 새 구조를 만드는 디지털 큐브의 움직임으로 옮겼다. 서체는 클림 타입 파운드리(Klim Type Foundry)의 죈(Söhne)이다. 좁고 둥근 획이 큐브 블록의 모양과 호응한다.

아카이브에 기록된 것만 봐도 한 스튜디오가 세 해 동안 AI 회사 세 곳을 연달아 맡았는데 결과물은 세포, 큐브, 말로 전혀 겹치지 않는다. 세 작업에 공통점이 있다면 AI를 설명하려고 기술의 이미지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셋 다 회사가 하는 일의 구조를 닮은 사물을 찾아냈다. 세포는 연결을, 큐브는 대응을, 말의 연속사진은 시간을 보여 준다.

완벽하지 않게 만든 글자

오픈AI는 2025년 2월, 창립 이래 처음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면 손봤다. 작업은 사내 디자인팀이 이끌었다. 헤드 오브 디자인 Veit Moeller와 디자인 디렉터 Shannon Jager가 주도했고 로테르담의 Studio Dumbar와 베를린의 타입 파운드리 ABC Dinamo가 함께했다. 세 개의 삼각형이 맞물린 '블로섬' 마크는 2016년에 처음 그린 '생명의 씨앗' 그리드를 바탕으로 한다. 이번에는 가운데 여백을 키우고 선을 정돈했다.

눈여겨볼 곳은 전용 서체 OpenAI Sans다. 알파벳 O의 바깥은 완전한 원인데 안쪽은 일부러 불완전하게 처리했다. 기하학의 명료함은 그대로 두되 기계적인 정밀함은 조금 누그러뜨리려는 선택이다. 기계가 만든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기계적 완벽함에서 한 걸음 물러선 셈인데, AI 분야를 대표하는 회사가 자기 글자에 일부러 흠을 넣었다는 사실이 이 업종의 고민을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주도권을 잃는 일이다.

바르셀로나의 스튜디오 Mucho가 Analog 아이덴티티의 출발점으로 삼은 명제

같은 고민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 작업은 Analog다. 엣지 AI와 스마트 센서, 혼합현실을 다루는 이 회사를 위해 Mucho는 2025년 위의 명제에서 출발했다. 자동화와 통제의 언어를 버리고 증강과 가능성의 언어를 쓰기로 했다. 로고는 맞물린 포털 두 개다. 이미 아는 것과 아직 상상 속에 있는 것을 잇는 다리라는 뜻이다. 서체는 Extraset의 ES Klarheit Kurrent를 썼고 깊은 중성색 위에 강렬한 강조색을 찍었다. 브랜드의 본질은 'Unseen Realities', 보이지 않는 현실들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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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e 3Analog의 팔레트. 깊은 중성색을 바탕에 깔고 분홍·보라·파랑의 강조색을 찍는 구성이다.

How&How가 2025년에 만든 Jupi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경영 판단을 돕는 AI를 표방하는 이 회사의 로고에서 인물은 사색에 잠겨 앉아 있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뗀다. 생각에서 실행으로 넘어가는 지성을 그린 것이다. 일러스트는 마그리트풍의 초현실 장면으로 채웠고 화면 전환 모션은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에서 빌렸다.

보이지 않으려는 브랜드

반대 방향으로 간 곳도 있다. 출처를 인용하는 AI 검색 퍼플렉시티는 2024년 스튜디오 스미스앤딕션(Smith & Diction)에 아이덴티티를 맡기며 스칸디나비아의 지하철 안내 체계처럼 정돈됐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인상을 주문했다. 화면의 주인공은 답변이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워드마크는 그로테스크 서체 FK 디스플레이로 짠 소문자다. 사람들이 검색창에 소문자로 입력하는 습관을 따랐다. 심벌은 출처를 표시할 때 쓰는 별표(에스터리스크)에서 가져와 회전문이나 펼친 책처럼 입체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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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e 4퍼플렉시티의 팔레트. 코어는 오프블랙과 페이퍼 화이트, 그리고 청록 계열의 트루 터쿼이즈다. 다크·라이트 두 모드를 두고 강조색은 되도록 줄였다.

퍼플렉시티의 선택은 로빈과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출발점은 같다. 둘 다 AI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보다 사용자 앞에서 어떻게 물러서거나 다가서야 하는지를 먼저 정했다. 로빈은 온기로 다가서고 퍼플렉시티는 정돈된 침묵으로 물러선다.

아홉 곳을 나란히 놓으면

아홉 곳의 작업을 한 줄에 세우면 흐름이 하나 보인다. 초기 AI 브랜드가 '미래'와 '지능'을 그리려 했다면, 최근 작업은 AI가 하는 일을 사람이 이미 아는 사물로 번역하려 한다. 울새, 말, 세포, 큐브, 걸어 나가는 조각상, 출처를 가리키는 별표가 그 사물들이다. 색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제미나이는 AI 전용 색을 버리고 모회사의 색으로 돌아갔고 로빈과 Cohere는 숲과 버섯의 색을 가져왔다.

누가 그렸는지를 따라가면 또 다른 지도가 나온다. Pentagram은 세 해 연속 AI 회사를 맡았고 오픈AI는 사내 팀이 외부 스튜디오와 타입 파운드리를 불러 모았다. 서체를 새로 짓거나 전문 파운드리의 글자를 고른 곳이 많다는 점도 눈에 띈다. OpenAI Sans, 죈, FK 디스플레이, ES Klarheit Kurrent가 그렇다. 얼굴이 없는 제품일수록 글자가 목소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